어제부터 내린 비가 오늘까지 이어져 추적추적 내렸다. 지난밤에는 억수처럼 쏟아지던 비가 오늘은 안개비처럼 하늘에서 흩어져 내렸다. 이런 날은 외출을 하지 않는 것이 국룰이지만 안타깝게도 일정이 있었다. 바로 한 달 만에 피부과를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피부가 좋다는 것은 축복 이상 로또 이하의 복이다. 이렇게 번거롭고 돈과 시간, 정성 등의 자원이 많이 들어가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니, 누구나 있는 지병이라면 보험 되는 종목이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다행히 병원이 세시까지라 이렇게 하늘의 비를 쳐다볼 여유도 생겼다. 내리는 비가 마치 봄의 끝을 알리는 것 같았다. 꿉꿉함이 더해지는 것 보니 서서히 여름이 시작되는 건가 하는 마음에 아찔해졌다. 두툼해진 뱃살 때문이었다.
오전 내내 비비적거리다 시간을 보고 헐래 벌떡 일어나 대충 아침을 챙겨 먹었다. 엄마가 보내준 떡 하나에 따뜻한 바닐라 라떼였다. 요즘 고민 하나가 있다면 계속 단 것이 당긴다는 것이었다. 짠 것은 좋아해도 단 것은 그렇게 좋아하는 입맛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단 커피와 과자에 손이 간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 건지, 약이 부작용인 건지 알 수 없지만 하루 빨리 헬스장이라도 끊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운동을 안 한지도 백만 년이 되어가서 그런지 몸은 더욱 둔해지고 지방층은 더욱 쌓여가는 요즘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뚱뚱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변화를 겪고 나아간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귀찮은 일이니까. 세탁을 맡기려 한 구석에 쌓여있는 옷들을 쳐다보니 변화의 무게가 실감이 났다. 저걸 언제 다 처리한담.
머리만 대충 감고, 말리고 그렇게 엉망인 방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성공을 논하기전에 방부터 치우라던데,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이렇게 습관이 안 들다니 꼭 돌아와서 정리해야지 마음먹고 다행히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우긴 치웠다. 내일 동생이 올라오기 전에 청소기만 쓱 한번 돌리면 잔소리는 피할 수 있겠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다니는 함익병 피부과는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다. 한티역이라는 생소한 역이었는데, 언젠가 이 동네가 익숙해지면 좋겠다 생각이 들 정도로 부자 동네였다. 무엇보다 집 근처에는 없는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위치하고 있었고, 역 앞에 바로 롯데백화점이 있었다. 진료를 보고 약을 탄 후 영수증을 한번 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너무 비쌌다. 당연히 시술에 비하면 싼 가격이지만 내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금액이긴 했다.
아직도 내리는 안개비를 조금 맞으며 신세 한탄을 10초 정도했다. 한탄해서 뭐하나 하는 마음으로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에 먹는 베토디였다. 서울대입구역에 맥도날드가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은 먹었는데 철수한 지금, 맥도날드 먹을 일이 없다. 대표가 바뀌었다더니 퀄리티가 확실히 올라가긴 했다. 맛있는 걸 먹으니 확실히 조금 위로가 되었다. 올해의 목표는 화장을 안 하고 다녀도 되는 피부를 만드는 것, 이 정도 투자는 불가피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지막 베토디를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