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9월, 드디어 1년 12달 중 가장 친애하는 달을 맞이했다. '왜 9월을 가장 좋아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냐'는 말 대신 조금 더 영양가 있는 답을 할 자신이 있다. 우선 첫 이유는 내가 가을에 태어나서다. 어릴 때야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드물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은 날이 드문 나이가 되었으니 별일 없이 지나가는 생일도 기쁜 일이 된다.
풍요로운 가을 태생의 사람은 여유롭다는 말이 있어 그런지 여유가 넘치다 못해 게으른 사람으로 자라버린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그래도, 그래서 가을이 좋다. 생년월일 여덟 숫자 중 무려 50%가 9인 것도, 9월을 사랑하는 이유로 설득이 되면 좋겠다.
9라는 숫자는 남은 1만큼 여유가 있으면서도 10에 가까워 가득찬 느낌을 주는 묘한 숫자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성에는 가까워져 있는, 마치 마무리까지 한 줄 남은 에세이처럼 기분 좋은 숫자라고 칭한다면 내 마음이 조금 전해질까.
그 외에 9월을 좋아하는 이유를 더듬어 본다면 더위를 싫어하는, 땀이 많은 체질을 들 수 있다. 땀으로 괴로웠던 계절을 지나 9월이 되면 좋아하는 셔츠도 가볍게 느껴지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특히 단풍에 물이 들듯 옷장이 베이지톤으로 물드는 것을 보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 입지 않더라도 꼭 가을이 되면 브라운 계열의 스웨터를 하나 장만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 풍경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9월 특유의 가벼운 공기와 시작의 기운이 좋다. 살 위로 닿은 햇볕, 온도, 습도 모두 조금씩 버석해지기 시작하는 달. 여름이 지니는 청춘의 느낌보다, 항상 그런 쓸쓸함이 녹아 있는 날씨가 더 좋다. 내 마음도 공기와 같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드니까.
봄부터 시작되었던 벌레와의 전쟁이 휴전에 들어서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냥 이 참에 이 집을 떠나 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들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추울 때만이라도 자취를 감춰주는 것에 감사하다.", 라는 그릇에 맞지 않는 선심을 쓰기도 좋은 달이다.
가을에 먹는 아이스크림도 좋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과 보내는 날이 손에 꼽는 반면, 9월이 되고 먹은 것은 벌써 오늘이 세 번째. 글을 적다 말고 한입 베어 문 구구콘이 구름처럼 달콤하다. 8월의 더위에 미지근하게 느꼈던 아이스크림이 9월에는 다시 차가워진다. 차가운 것은 차가울수록 맛있는 법이다.
새 학기의 설렘은 덤이다. 나에게도 학교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절, 가을학기가 시작되면 예쁜 블라우스와 조끼로 되어있는 춘추복으로 꺼내입고 친구들 만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학교로 간다. 봄학기는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이라 설렘 안에는 두려움도 함께 있지만 가을학기는 내가 아는 설렘이라는 점, 마치 회전목마같은 설렘이 있다.
여름에는 더워서 하지 못한 '석식 후 산책'도 선선한 9월이 되면 친구들과 몇 바퀴고 돌았다. 특히 수능을 두 달 앞둔 시점의 9월은 운동장 모래만큼이나 많은 고민으로 그곳을 돌았던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당시 친구 얼굴 위로 드리웠던 근심 어린 그림자가 생생하다. 친구 눈에도 나 또한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올해의 9월도 그때의 9월만큼 특별하다. 3개월 한도의 20대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10대도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지만 20대는 더 빠르게 흘렀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던 엄마의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한국 사람들은 끝자리가 9로 떨어지는 나이가 되면 흔히 '아홉수'라는 이름을 붙인다. 9살과 10살의 차이보다 19살 20살의 차이가 더 크고, 29살과 30살은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도 이러한 '수'때문이 아닐까. 실제로는 올해 마지막 날의 나나, 그다음 날의 나는 별로 다름이 없을 것인데 말이다.
엄마 나이때만 해도 29살에 시집을 안 가고 있으면 노처녀 타이틀 달기 쉬웠지만 지금은 웬걸,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겁다. 나이를 과식한 어린아이. 아직 각종 공과금과 핸드폰 요금도 버거운, 나 아닌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죽음만큼 낯설게 다가오는 상태다. 정신이 육체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워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한 살 더 먹은들 뭐가 달라질까. 예민한 척 하고 싶어도 예민할 포인트가 아무것도 없다. 최소 8년, 심지어 그 이후가 되더라도 결혼 생각은 아직 없고 내년도 올해와 같이 나 자신과 잘 놀며, 자주 있는 불행을 견디고 가끔 있는 행복에 눈물겨워하는 삶을 살 예정이다. 다만 돈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 제발!
이것은 비단 29살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39, 49, 59, 69, 79, 89, 99도 마찬가지일걸!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아홉수?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나는 뭐하나 나아진 게 없어 그대로지만 또 별 거인 것이 맞다면 조금 억울하지 않겠는가, 따라가야지.
통장의 돈은 그 성장을 멈췄고,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해돋이도 집에서 볼 판. 어느 해보다 변화 없는 2021년이 될 것 같은 예감이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괜찮다. 9는 9라서 좋지만 0은 또 0이 주는 멋있음이 있다. 앞으로 남은 무수한 숫자들 앞에 지금 내 아홉수는 너무 작지만 소중하다. 또 아홉수를 살아냈기에 0이라는 멋진 전환점도 맞이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10월 이후의 11월과 12월은 항상 덤으로 사는 생각이 든다. 다음 해에 대한 걱정과 불안, 그리고 버리지 못한 기대 때문일까. 카뮈의 부조리를 머리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한 내가 또 기대를 한다. 늘 그랬듯 10월까지 충실히 살아내고 남은 두 달은 선물처럼 살아야겠다.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이들에게 부지런히 안부를 전해 내 마음만은 늦는 일은 없도록 하며. 삶도 이렇게 늦는데 마음까지 늦어야 되겠나.
2020. 09
브런치에 발행한 글을 약간의 수정 후 옮겨온 글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최근의 에세이를 볼 수 있어요. 😀
https://brunch.co.kr/@crystal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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